쓰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의도된 연습의 결과이다:
글쓰기를 인지 과학으로 다시 보다
시리즈 2에서 시리즈 3으로
시리즈 2 「교육 정책 심층 분석」에서는 고교학점제, 수능 개편, 내신 5등급제, AI 디지털 교과서 등 교육 제도의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제도는 계속 바뀌지만 하나의 결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시리즈 3 「글쓰기·사고력 교육」 은 바로 그 능력의 실체를 다룹니다. 글쓰기를 못하는 아이는 머리가 나쁜 걸까요, 아니면 아직 훈련이 되지 않은 걸까요. 책을 많이 읽히면 글을 잘 쓰게 될까요. 말은 잘하는데 글은 왜 못 쓸까요. 이 시리즈는 교육학 석사,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 전공을 한 제가 글쓰기에 대한 질문들에 인지과학과 언어습득 이론으로 답하고, 글쓰기 능력을 실제로 키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시리즈 1이 학습의 원리, 시리즈 2가 교육 제도의 구조를 다뤘다면, 시리즈 3은 사고와 표현의 기술을 다룹니다. 세 시리즈를 함께 읽을 때, 내 아이의 교육 전략이 가장 입체적으로 완성됩니다.
열세 번째 담론: 한국 아이들이 글을 못 쓰는 진짜 이유 — 쓰기 교육이 없었다
결과만 요구하고 과정은 가르치지 않은 것의 대가
"왜 이렇게 글을 못 쓰지?" — 잘못된 질문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를 보며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원래 글쓰기 감각이 없나 봐." 혹은 "논술 학원을 더 보내야 하나." 그런데 대치동에서 오랫동안 논술학원을 직접 다녔던 제 입장 그리고 쓰기 교육을 전공하며 학생들을 지도해 온 경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이 두 가지 모두 문제의 본질을 빗나간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글을 못 쓰는 것은 재능의 문제도, 형식 훈련의 부족도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쓰기는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진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결과만 요구하고 과정은 가르치지 않은 교육
한국 쓰기 교육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쓰기 결과물은 학교 교육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요구되지만,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수업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일기와 독후감을 씁니다. 그러나 어떤 구조로 써야 하는지, 쓰기 전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수행평가 보고서와 설명문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보고서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배열하는지는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야 논술 학원에서 형식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서론-본론-결론의 틀을 외우는 것이 중심이고, 글을 쓰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려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훈련은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글을 읽는 독자에 대한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훈련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공통된 패턴이 나타납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순서대로 풀어내는 방식, 즉 떠오르는 대로 쓰기입니다. 계획 없이 시작해서 쓰다 보면 방향이 바뀌고, 결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마무리됩니다. 논술 학원에서 형식을 배우고 개요를 쓰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사고가 없는 글, 구조는 있는데 주장이 없는 글이 만들어집니다.
Toulmin 논증 모델 — 왜 사고 없이 형식만 익히면 반드시 무너지는가
영국 철학자 스티븐 툴민(Stephen Toulmin)이 제시한 툴민 논증 모델(Toulmin Model of Argumentation)은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론적 틀입니다.
툴민은 논증의 핵심 구조를 세 요소로 설명합니다. 주장(Claim)은 필자가 글 전체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핵심 명제(thesis)입니다.
데이터(Data)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와 증거입니다. 보증(Warrant)은 데이터가 어떻게 주장을 지지하는지를 설명하는 논리적 연결 고리입니다.
단순한 템플릿 형식 훈련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데이터, 즉 근거를 나열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세 요소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자주 빠지는 것이 바로 보증입니다. "이 근거가 왜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가"를 설명하는 논리적 연결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문제입니다. 쓰기 전에 자신의 주장이 무엇인지, 그 주장을 어떤 논리로 뒷받침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보증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한국 쓰기 교육이 보증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사들조차도 이러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특히나 문장과 문장 그리고 문단과 문단을 연결하는 보증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훈련 없이는 가르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과정을 생략한 쓰기 교육의 대가
사고 훈련 없이 형식만 익힌 결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주장 없는 글입니다. 형식을 갖추고 근거도 나열했지만, 읽고 나면 필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불분명한 글입니다. 두 번째는 설득력 없는 글입니다. 근거를 여러 개 나열했지만, 그 근거들이 왜 주장을 뒷받침하는지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글입니다. 툴민이 말한 보증이 빠진 상태입니다. 독자는 글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근거와 주장 사이의 연결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고, 글쓴이의 주장은 이미 독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대치동 현장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논술 수업에서 형식을 익힌 학생들이 실전 문제 앞에서 막히는 지점은 대부분 같습니다. 형식은 알지만, 지금 이 주제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 그 주장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구성할지를 쓰기 전에 생각해 본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마무리 — 형식을 가르치기 전에 생각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좋은 글의 조건은 정해진 형식이 아닙니다. 수려한 필력 혹은 완벽한 맞춤법도 아닙니다. 오히려 고등학생 수준에서 쓰는 대부분의 글은 쓰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그 주장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논증할지를 설계하고, 쓴 것을 다시 읽으며 논리의 흐름을 점검하는 것. 이 사고의 과정이 형식이나 타고난 필력보다 먼저입니다.
형식이나 맞춤법은 이 사고의 과정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그릇이 아무리 정교해도 담을 내용이 없다면, 결국 빈 그릇입니다. 쓰기를 잘 가르친다는 것은 형식을 더 정교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쓰기 전에 생각하는 법, 주장을 세우는 법, 근거와 주장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것입니다.
📚 다빈치 코드룸 시리즈 3| 글쓰기, 사고력 교육
이 시리즈에 대하여
글쓰기는 오랫동안 타고나는 재능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인지과학과 언어습득 연구는 다른 결론을 가리킵니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인지 과정이며, 그 과정은 이해하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글쓰기 교육을 전공한 저자가 글쓰기 교육을 둘러싼 여섯 가지 핵심 질문을 다룹니다. 한국 쓰기 교육의 구조적 부재, 글쓰기가 어려운 인지적 이유, 읽기와 쓰기가 다른 회로라는 사실, 말과 글의 차이, IB 교육의 글쓰기 접근법, 그리고 의도적 연습이 쓰기 훈련에 적용되는 방식. 각 편마다 이론적 근거와 현장의 시각을 함께 담아, 학부모가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방향을 제시합니다.
📋 목차 및 다른 편 바로가기
13편 한국 아이들이 글을 못 쓰는 진짜 이유 — 쓰기 교육이 없었다
14편 내 아이는 원래 글쓰기에 약한 아이가 아니다
15편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못 쓰는 아이, 왜 그런가 — 읽기는 재료이고 쓰기는 요리다
16편 말은 청산유수인데 글은 두 줄도 못 쓰는 이유 — 말과 글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17편 IB 교육이 글쓰기를 가르치는 방식이 다른 이유 — 탐구 기반 학습(IBL)
18편 수행평가 글쓰기, 많이 쓴다고 늘지 않는 이유 — 의도적 연습만이 답이다
🏫 다빈치코드룸 소개
다빈치코드룸(DaVinci Code Room)은 대치동 교육 현장의 경험과 교육학 이론을 바탕으로, 초등·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교육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전략적으로 배우는 아이가 오래간다"는 믿음 아래, 단순한 학습 정보가 아닌 교육의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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